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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도 망했다? 45

제45화 아버지의 이야기


시중가격 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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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 웹툰,웹소설
강사명 입센
수강일수 180일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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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아버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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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현은 마침 바위 곁을 지나다가 잠들어 있는

 공주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토록 아름답고 정결한 여인이

 이 아리수가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간현은 발자국소리를 죽여가며 공주의 곁으로 다가갔다.

 간현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너무도 아름다운 공주의 자태에 그만 두려움이 생겼다.


 그러나 간현은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어 여인을 깨워보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끼이룩, 끼이룩.

 철썩, 철썩.


 강물 위에서 물새가 울고 있었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공주는 가만 눈을 떴다.

 그리고는 그만 벌떡 일어났다.


 "누구십니까?"

 "예?"

 옷깃을 여미며 당돌한 공주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대는 누구십니까?"

 "혹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아니십니까?"


 공주가 입고 있는 옷은 일찍이 구경한 적이 없는 옷이었다.

 간현은 공주가 선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옷은 어렸을 때 들은,

 궁중에 사는 임금님의 딸이나 선녀가 입는 옷과 같은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저는 선녀가 아니옵니다."

 

 공주는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디에 사는 누구십니까?"


 이 여자는 분명 사람이 아닐 거야,

 틀림없이 선녀일 거야.


 간현은 공주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했다.

 

 "도련님은 누구신데 소녀의 연고만 물으시오?"

 "나야 도령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사는 총각어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일부러 총각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자신의 행색을 보아 혹시 저쪽에서 혼인을 한 남정네로 알까하는 노파심에서였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간현은 여전히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말을 했다.

 그저 황홀하고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어부라면 무슨 고기를 잡습니까?"

 "무슨 고기라니요……어부가 따로 잡는 고기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오래 전부터 앓고 있는 어머니께서 잉어가 잡숩고 싶다고 하시기에 이제 막 물가로 나가려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간현은 뜻하지 않은 여인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잉어를 잡으러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까맣게 잊고 하루 해를 넘기고 말았다.

 물론 다른 근심 걱정도 그의 마음 속에서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공주는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강기슭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집이 아리수 아래쪽인 모양이라고 간현은 짐작했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간현은 다음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빈 손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현아, 잉어는?"


 그물을 내려놓는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방 안에서 잉어를 잡아왔는냐고 묻는 소리였다.

 간현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예, 어머니. 그런데 오늘은 영 안 잡히네요."


 간현은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고집불통으로 어머니 말을 잘 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거짓말을 한 적은 없는 간현이었다.


 그러나 이튿날도 간현은 어머니에게 잉어를 잡아다 드리지 못했다.

 아리따운 그 여인과 모랫벌에서 하루를 보낸 것이다.

 그 여인을 만나면 아무런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간현과 공주는 이렇게 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만나서 하루 낮을 보내고,

 뜨거운 해가 바닷가로 빠지기 전에 아쉬운 이별을 하곤 하였다.


 그들은 어느덧 연연한 사랑의 싹을 피우며

 안타까운 하루하루를 맞이하고 또 보냈다.


 간현은 아예 고기잡이를 걷어치우고 공주만을 만났다.

 어머니는 이제 진짜로 병이 들었고,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관청에 갖다 바치는 것은 고사하고

 먹을 양식마저 걱정해야 할 판이 되었다.


 "이렇게 허기가 지도록 병든 어미를 굶기느냐? 늙고 병든 어미가 보기 싫다면 오늘부터 나는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겠다."


 간현은 짜증이 났다. 그 동안 잡아온 물고기가 얼마나 많은데,

 간현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면서 쏘아붙였다.


 "그 많은 물고기를 다 드셨으면 이제 일어날 때도 되셨구만, 괜스레 생트집이에요. 내가 뭐 아리수 용왕이라도 되나?"

 "너도 니 아버지꼴이 되겠구나."


 어머니가 울먹이며 그렇게 탄식했지만

 공주에게 미쳐있는 간현은 그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을 리 없었다.


 간현은 혼자 동구 밖에 나가서 공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 둘이서만 산 속으로 들어간다면……

 간현의 상상력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물론 그 다음날도 빈손이었다.

 어머니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얼굴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다.

 그러나 그렇다고 간현의 눈에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이 보일 리 없었다.


 간현은 밤낮으로 공주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비상수단을 강구하기로 하였다.


 그날도 공주와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빈손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간현이 방문을 열었을 때

 방 안에는 피냄새가 가득했다.

 이불은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어머니!"

 "...!"


 그제사 간현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라를 먹어야 한다. 자라를.


 "자라를 잡아올께요."


 간현은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노여움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는 끝내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쿨룩, 쿨룩."

 "오늘은 속지 않는다."

 "어머니 오늘은 거짓말이 아니어요. 기다려주셔요."

 "차라리 전장으로 가라."

 "어머니!"

 "나도 이제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간현은 그 말을 듣지 않고 방을 뛰쳐나갔다.

그물을 어깨에 둘러메고 급하게 나루로 향했다.

 물론 공주와 만날 장소가 아닌 반대 편의 나루였다.


 사정은 공주도 마찬가지였다.

 부왕의 영을 어긴 죄로 공주는

 서라벌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공주 또한 간현을 만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이 그리웠다.


 공주는 부지런히 바닷물을 헤치고 육지를 향해

 아리수를 거슬러 올라왔다.


 언제나 간현과 만나는 그 모랫벌의 바위를 찾아갔다.

그러나 한낮이 기울어도 간현은 나타나지 않았다.


 뜨거운 햇살이 공주의 눈물을 닦아주고,

 아리수를 나는 물새가 그녀의 마음을 만져주었다.


 공주는 간현이 오던 마을 쪽 길로 나가보았다.

 그러나 간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지자 날씨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불었다.


 강물이 거세게 날뛰고 있었다.

 무서운 폭풍은 한밤내 아리수를 뒤집어놓고 말았다.


 초막으로 가는 길이 끊긴 것이다.

 공주는 그날밤 초막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리수 기슭에서 잠들고 말았다.


 급하게 아리수로 나간 간현은 밤이 이슥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자라를 잡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캄캄한 밤이 되었는데도 아직 아리수 강심에 있었다.


 그 날 밤 간현의 어머니는 간현을 기다리다 못해 병든 몸을 이끌고

 나루 이곳저곳을 살피고 다녔다.


 "현아!"

 "현아!"


 강가에서 헤매고 있을 아들을 걱정한 어머니는

 천둥 번개 속에서 아리수 기슭을 헤매었다.


 "악아, 잉어 필요없다. 악아, 자라도 필요없어."

 "아악!"


 미친 듯 강기슭을 헤매던 어머니는 그만

 아리수 급한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다.

 억센 아리수는 간현의 어머니를 삼켜 버린 것이다.


 하늘은 어느새 맑아 있었다.

 새벽이었다.


 그 반짝이는 별을 살풋 잠이 깬 공주는 바라보고 있었다.

 간현은 아리수 한가운데에서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배는 산산조각이 났다.

 뱃조각 하나에 몸을 실은 그가 돌아온 것은 이튿날이었다.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변한 것은 조금도 없는데……

 집 안은 텅비어 있었다.


 방문을 열어젖혔다.

 어머니가 없었다.


 간현은 마당에 쓰러져 목을 놓았다.

 

 "늙은이가 변을 당했으니 이젠 저놈을 전장으로 보내야지. 그 동안 잉어고 자라고 참 배 터지게 먹었는데, 쯔쯧!"


 관청에서 나온 포졸들의 말을 듣고서야 간현은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많은 고기를 어떻게 처분했는지,

 어째서 관청에서 자신에게만 영장을 발부하지 않는 호의를 베풀었는지를.

 어머니가 잉어를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간현은 알지 못했다.


 날마다 잉어를 잡지 않으면 간현이 전장으로 끌려갈 판이었다.

 마을에 장정은 하나도 없었다.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남자들은 전쟁터로 나갔다.

 유독 간현만이 어머니를 봉양한다는 이유로 영장을 미룰 수 있었다.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관청에서 간현의 딱한 처지를 이해해 주어서가 아니었다.


 간현의 어머니는 간현이 잡아온 고기의 거의 전부를

 관청의 웃어른?들에게 상납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아프지 않았다.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은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장에 나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어머니는 간현이 아리수로 나가면 그때 어물들을 처리했다.

 약속이 있었다.


 누구에게라도 비밀이 새어 나가면 아들은 끝이야.

 아들도 모르게. 모르게…….


 "어제밤에 변을 당했네. 아마 자네를 찾으러 물가로 나갔다가……"


 그러나 이웃사람들의 말은 간현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는 무턱대고 다시 아리수 기슭으로 뛰어나갔다.


 역시 어머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간현은 무심한 아리수를 쳐다보며 무릎을 끓었다.


 그 때 옷이 갈기갈기 찢긴 공주가 눈물을 흘리며 옆으로 다가왔다.

 말못할 서러움이 복바쳤지만 간현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그는 아주 집을 나왔다.

 그러나 간현은 천천히 공주와 등을 지고 걷고 있었다.

 아리수와 반대 편이었다.

 그는 아리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갈 곳이 없습니다."


 공주의 애절한 호소도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공주가 그의 뒤를 따라갔지만

 점점 바람처럼 걸어가는 간현을 잡을 수는 없었다.


 무엇 때문일까?

 갑자기 돌변한 간현의 태도에 공주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공주는 간현을 따라가다가 그만 모랫벌 위에 쓰러졌다.

 간현의 모습은 이미 한점이 되고 있었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 기다릴 겁니다.

 저 해가 하늘에 떠 있는 한. 이 모랫벌에서 기다리겠어요."


 결국 간현은 돌아왔다.

 그리고 맺어졌다. 


 그 엄마를 꼭 닮은 두 딸.

 달래는 엄마의 성정을 닮았고

 분홍은 엄마의 외모를 그대로 빼다박았다.


 벌써, 쿨쿨 잠이 든 분홍.

 그것을 보고 웃는 달래와 비거.

 "!?"

 "저희들은 간현 영감님의……"

 "간현 영감님이라면……아, 그 영감님! 언젠가 겨울, 같이 숯을 구운 적이 있지요. 그렇다면 그 영감님의 딸들?"

 "아버지가 강 건너 비거 씨만 찾아가면 된다고 했어요."

 "하하. 영감님이 늘 딸 자랑을 했지요. 백제의 피를 이어받아서 예쁘다고. 흐흐. 정말 그렇네요."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어서 감사합니다."

 "당치도 않은 말씀. 정말 산을 넘었다니 대단합니다."

 "분홍이 때문에 살았습니다. 남정네들도 쟤는 못 당합니다."

 "그래요?"

 "어릴 때부터 겁이 없어요. 산들 마구 마구 뛰어다니지요."

 "두 분 다 선녀 같습니다."


 "우리 분홍이가 예쁘지요. 전 분홍이보다 예쁜 처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제 눈에는 달래씨가 더 예쁜데요?"

 "놀리지 마세요."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아니, 이 추운데 방을 놔두고 어디로?"

 "아이고 저 같은 무지렁이가 어떻게 선녀같은 두 분 틈에 자겠습니까?"

 "전혀 괜찮습니다."

 "저는 더 괜찮습니다. 아무 생각 마시고 푹 쉬세요."

 "너무 죄송합니다."

 

 부엌에서 신나게 불을 때는 비거.

 흐뭇한 표정.


 잠이 든 분홍 옆에 누운 달래.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자꾸만 불타는 집과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잠이 든 비거.

 그에게 이불을 덮어 주는 달래.

 그리고 다음 해 봄이 올 때까지.   


 달래는 항상 고개를 들어 멀리 북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가슴 가득히 밀려왔다.


 아버지가 결코 무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분명 아버지는 분홍과 자신을 이곳 백제 땅으로 보내고

 어떠한 일이라도 감당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아버지는 그곳에서

 죽을 각오를 하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달래는 북쪽으로 달아나듯이

 잇닿아 있는 산맥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달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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